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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정치평론학회 인사말

이 동 수(경희대 교수, 회장)

안녕하세요. (사)한국정치평론학회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계와 언론계 인사들이 성숙한 공론의 형성과 이를 통한 사회통합을 목적으로 2003년 12월 설립되었습니다. 성숙한 공론의 형성이란 단지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따지는 정사논쟁(正邪論爭)의 결과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의 개진과 소통을 통해 상호이해와 합의를 추구하는 과정으로서, 이는 정치의 궁극적 목적인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저는 예전의 한 논문에서 정치세계를 구성하는 정치적 인간을 세 종류로 나눈 바 있습니다. 정치행동가(political actor), 정치사상가(political thinker), 정치평론가(political critic)가 그것입니다. 먼저 정치행동가란 정치세계의 현장에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며 적극적으로 현실을 움직여나가는 사람입니다. 둘째, 정치사상가는 끊임없이 정치의 개념, 이념, 사상을 천착함으로써 보편적인 정치 일반(politics in general)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정치평론가는 정치행동가와 같이 직접적인 정치행위를 하지는 않지만 정치사상가처럼 정치 일반에 대한 추상적인 탐구에 그치지 않고 현실정치에 대해 일상의 수준에서 말하고 대화하며 비판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아렌트(Hannah Arendt)가 말하듯이 정치세계가 행위(deeds)와 말(words)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때, 정치행동가란 직접적인 행위를 통해 정치세계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며 정치사상가와 정치평론가는 주로 말로써 정치세계와 관계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정치행동가도 말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는 본래 말보다 실천적 행위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의 말은 종종 수단적 성격을 지닙니다. 즉 정치행동가의 말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동원하는 일종의 수사적인 말이 많습니다. 이런 말은 대개 연설문이나 선언문 형식으로 나타나며, 이 말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는 청자(聽者)들이 그 말을 믿고 따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반면 정치사상가와 정치평론가는 말을 통해 정치세계와 관계합니다. 하지만 정치사상가가 사용하는 말과 정치평론가가 사용하는 말은 그 종류가 다릅니다. 정치사상가는 보편적인 개념과 이념, 타당한 사상을 추적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로고스(logos)로서의 말을 사용합니다. 이런 말은 진리추구적·논리적이라는 점에서 철학적 언어이며 진리를 지향합니다. 정치사상가의 말은 본래 진리성을 담고자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은 현실세계와 동떨어질 때가 있으며, 정합성은 있지만 그 상황에 적합한 적실성이 있는지는 불분명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사상가의 말은 비록 그것이 옳다고 하더라도 정치세계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합니다.

이에 비해 정치평론가의 말은 어느 특정한 정치현실 속에서 화자(話者)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알리고, 그들과 서로 소통하며, 사회적으로 공분과 공론을 불러일으키려는데 사용됩니다. 이러한 언어는 보편적인 진리(episteme)를 추구하기보다는 화자의 개인적·주관적인 의견(doxa)을 표명하는 것으로서, 무엇보다도 이야기로서의 말 즉 렉시스(lexis)의 성격을 지닙니다. Lexis로서의 말은 언어의 정합성이나 논리성에 입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당시 상황에 대해 화자가 자신의 주관적 경험이나 의견을 포함시켜 실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lexis로서의 말이 화자의 주관적 의견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지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 하나의 공동세계(common world)를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면, 그 말은 공적 영역에서 드러나는 말이기 때문에 청자인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의견에 대한 공감이나 합의를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감이나 합의는 lexis로서의 말에 logos적 차원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이해와 합의가 없다면 개인의 주관적 의견이 공론(public opinion)으로 승화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공론을 형성하는 정치평론이란 단순히 일반대중들의 정치에 관한 사담(私談)이나 정치행동가들의 정치연설과 구분되며, 또한 정치사상가들이 탐구하는 정치에 대한 철학적 담론과도 다릅니다. 일반인들의 정치대화는 lexis적 요소가 있기는 하나 너무 주관적인 의견에만 치우쳐 logos적 차원이 부족하며, 정치행동가의 연설이나 주장은 자신의 주관적인 lexis를 청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이기적인 말에 불과합니다. 한편 정치사상가의 말은 지나치게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logos적 요소만 추구한 나머지 자신의 lexis가 없으며, 따라서 청자들이 그 의견에 공감하거나 공적 의견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이에 비해 정치평론가의 말은 lexis와 logos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 청자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용이합니다.

저는 (사)한국정치평론학회가 이와 같은 lexis와 logos가 균형을 이룬 말들이 꽃을 피워 공론을 형성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 학회 회원분들이 모두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