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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평론학회 인사말(글과 글칼, 그리고 평론)

정 윤 재(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회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더운 여름 무사히 지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입추와 백로(白露)가 지나면서 어느 새 가을이 문턱을 넘었습니다. 어제는 눈부신 햇살과 청명하게 높은 가을하늘이 무척이나 아름답더군요. 그런데 어제오늘의 국내외 형편을 보면 그것은 결코 맑고 산뜻한 가을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정치는 여전히 효율적인 국가경영(國家經營)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불안불안하고 국내경기는 좀체로 불황을 이길 계기가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國際情勢)는 120여년전과 유사하게 변전하고 있어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挑戰)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어렵고 도전적인 국내외 사정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 역사 자체가 언제나 풍족하지 못한 채 내외의 도전과 위협들 속에서 겨우 생존(生存)해왔을 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한 개인도 그렇듯 국가나 민족도 물리적 생존단계가 지나면 새로운 욕구와 필요(必要)에 따라 자아실현(自我實現)의 내용과 수준이 달라지는 법이겠지요. 지금이 민족적으로 단군 이래 최고의 삶을 누리고 있다는 평가가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니라면, 그 역사 속에 녹아 전해 내려왔던 홍익인간, 화쟁(和諍), 풍류도, 인의, 민본, 천민(天民), 인내천, 민국(民國), 그리고 국민황제론 등의 보편가치들이 이제는 제대로 펼쳐지고 누려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아니 우리가 어둠을 헤치고 살아나온 것은 아마도 이러한 사람다움의 가치들로 꺼져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깨우치고 추스렸던 때문일 것입니다. 물질적인 풍족함과 쾌락 속에서도 그 사람다움의 가치들을 추구하며 그것들이 펼쳐진 세상을 “그리고, 그리워하며” 또 그런 고민과 고뇌를 적극적으로 자기 것으로 삼아 정진할 때 그 사람은 마음이 “긁히고” 이것저것에 “거치게” 되면서 비로소 “글”을 쓰게 된다고 합니다. 역사는 그런 속에서 고난과 영광이 언제나 교차되는 가운데 문명이 흥망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의 주변에는 그런 글쟁이와 안 보인다고 합니다. 우리의 일상사와 주변사들을 마구 써대고 지껄이기만 해도 누군가가 여러 문제들을 다 해결해 주지 않겠느냐는 식의 ‘리버럴한’(?) 평론들만 난무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글들은 많지만 “글칼”은 안 보인 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이야말로 내가 속한 공동체 차원의 각종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한 지적 노력으로서의 묵직한 평론들이 왕성하게 펼쳐져야 하는 시기인 것이지요. 평론(評論)이 분명 “말(言)로써 공평함(平)을 이루고” 또한 “말(言)로써 벼리(侖)를 세우는 것”이라면, 우리 평론학회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진다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이 청명한 가을에 두루 정연(整然)한 말들 많이 나누시면서 청명(淸明)한 글 많이 쓰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