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정치평론학회 회원의 칼럼기사를 발췌한 것입니다.
허민 전임기자
단일화 게임은 협상의 유형으로 볼 때 ‘경쟁’과 ‘협력’의 이중구조로 돼 있다. 단일화 때까지는 내부 경쟁자 간에 승부를 겨루는 치킨게임이지만, 단일화 후엔 외부의 경쟁자에 맞서기 위해 힘을 모으는 협력게임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게 ‘단일화 문법’이다. 윤석열과 안철수 두 사람은 현재 경쟁 단계다. 안철수는 ‘여론조사 단일화’를 선창(先唱)해 판을 주도하고 나섰다.
경쟁에서의 승리는 더 절박한 자들의 차지다. 이번 대선에서는 이재명-안철수-윤석열 순으로 절박하다. 단일화 제안도 그 순으로 이뤄졌다. 이가 안에게, 안이 윤에게 제안했다. 이재명은 “내가 대선서 지면 없는 죄 만들어 감옥 갈 수 있다”고 호소할 정도로 절박감에 몰렸다. 그는 윤석열에게 지지율을 역전당한 1월 중순 이후 안철수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누가 될지 모르는 ‘무지의 장막’을 치고 여론조사로 단일화하자고 제안했다. ‘안철수 대통령 후보’가 되는 상황도 감수하겠다는 메시지가 계속 전달됐다. 압도적 국회 의석을 동원한 정치개혁도 약속했다.
안철수는 이재명의 역(逆) 단일화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대신 윤석열에게 먼저 다가섰다. 명분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단일화 선창은, ‘완주 선언’에도 불구하고 단일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한, 유권자의 사표 방지 심리를 막기 힘들고 지지율 정체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이었다. ‘철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정치생명이 끝날지 모른다는 강한 우려도 작용했다. 안철수는 윤석열의 톱다운식 ‘10분 담판론’이 아닌, 보텀업식 여론조사 경선을 제시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캠프는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윤은 안의 ‘경쟁’ 제안에 ‘담판’ 혹은 ‘회피’ 전략으로 나오는 중이다. 그는 단일화 없이 다자 구도로 가도 이긴다는 위험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 같은 태도는 한 달 이상 이어진 지지율 우위로부터 배태됐다. 당 소속 여의도연구소에서 이틀이 멀다 하고 후보와 당 대표 등 극소수에게 지지율의 ‘압도적 우위’를 보고해온 게 방심을 부추겼다. 윤은 자신이 1%라도 패할 가능성이 있는 단일화 방식은 받지 않겠다며 측근들에게 입조심을 주문한 상태다.
정권교체에 찬성하는 유권자 상당수는 윤이 됐건 안이 됐건 단일화로 정권을 되찾아오기를 기대한다. 이들 유권자가 가장 걱정하는 건 단일화가 불발되는 것을 넘어, ‘보수+중도’ 단일화가 ‘진보+중도’ 단일화 협상으로 뒤바뀌는 것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잡는 게 정치다. 1997년 대선을 마지막 도전 기회로 삼았던 ‘민주투사’ 김대중은 절박감에 ‘유신잔당’ 김종필을 찾아가 무릎 꿇다시피 해 ‘DJP’를 만들어냈다.
일방적인 협상은 없다. 윤석열은 안철수를 만나지도 찾지도 않았다. 윤이 안의 양보를 전제한 담판만 주문한다면 야권의 ‘치킨게임’은 ‘협력게임’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사이 이재명은 안의 회심(回心)을 노린 명분 만들기에 나섰다. 이재명은 14일 서울 명동 유세에서 “묻지마 정권교체 아닌 정치교체를 해야 한다”고 외쳤다. 안철수의 구호다. 윤석열, 단일화 못하면 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