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정치평론학회 회원의 칼럼기사를 발췌한 것입니다.
윤석열과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가 3·9 대선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단일화 실패의 으뜸 요인은 상호 불신이다. 상대가 처음부터 거짓말과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거나 반대파와 내통할 것이라는 생각이 불신에 불을 지른다. 불신을 부추기는 세력은 많다. 단일화가 성공하면 손해 볼 사람들이다. 둘의 불신을 조장하려는 대표적인 세력은 민주당이다. 민주당 쪽에선 안철수와 이재명 후보의 단일화 가능성을 간단없이 흘리고 있다. 민주당의 손짓에 안철수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하지만 윤석열은 그것만으로 안 후보의 속내를 알 수 없다. 당장 전화 연락이라도 직접 하고 싶지만 보기 좋게 퇴짜라도 맞으면 무슨 꼴이 되나.
불신을 부추기는 세력: 민주당과 이준석, 윤핵관
불신을 증폭시키는 또 다른 세력은 당내 이준석 대표와 캠프 주변의 이른바 ‘윤핵관’들이다. 이들은 윤석열-안철수 단일화가 국민의힘을 분열의 소용돌이에 빠트려 정권교체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을 멈추지 않는다. 이준석과 윤핵관은 앙숙이지만 안철수 앞에선 같은 입장이 되었다. 그들은 여론조사 수치만을 근거로 안철수와 단일화를 하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펴고 있다.
윤석열은 불신 조장 세력들의 덫에 걸려들지 않았다. 그는 “단일화 문제는 내게 맡겨 달라”고 했다. 이준석이나 윤핵관들에게 끼어들지 말라는 경고다. 윤 후보는 또 안철수 후보를 향해 “서로 신뢰하면 10분 안에 커피 한잔 마시면서도 (단일화를)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당신을 신뢰하니 당신도 나를 신뢰해 달라는 메시지다.
역사적으로 대선후보 단일화는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는 용기의 문제였다. 한쪽 주인공은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후보직 외에 모든 것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다른 쪽은 상대방에게 속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그동안 쌓았던 정치 자산 전체를 내던져야 했다. 두 가지 행동은 동시에 일어나야 했다. 1997년 DJP 후보 단일화의 한쪽 당사자인 김종필(JP)은 “새끼와 어미가 알껍질의 안팎에서 같은 강도로 동시에 쪼아야 병아리가 태어난다. 강도에 차이가 있다든가 때에 불일치가 있으면 탄생은 불발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뢰의 등가성과 시점의 동시성이 후보 단일화의 절대적 조건임을 강조했다.
김대중(DJ) 대통령은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심야에 김종필 집을 찾아갔다. DJ는 거실에 들어서 소파에 잠시 앉았다 갑자기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김(종필) 총재님, 이번 대선에서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간구했다. JP는 그 순간 DJ의 진정성을 믿게 되었다(『김종필 증언록』 2016년). 야당에 의한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는 이처럼 DJ의 격을 따지지 않는 자존심 내려놓기와 JP의 상대방에 대한 진심 확인이란 절차를 밟아 완성됐다.
윤석열이 먼저 전화해 안철수의 신뢰 얻어야
다시 2022년 대선으로 돌아와 보자. 윤석열이 먼저 전화를 걸어 면담을 요청하고 이를 안철수가 수용하면 반 이상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둘이 신뢰 확인을 위한 자기 몫의 미션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다른 어떤 사람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그다음 차례는 두 사람이 대면 미팅에서 협상 보따리를 풀어놓는 것이다. 난항이 이어지겠지만 첫 번째 신뢰 쌓기만큼 어렵진 않을 것이다. 대체로 만남이 성사되면 협상은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첫 단추를 잘 꿰는 일은 어떤 경우에서든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