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정치평론학회 회원의 칼럼기사를 발췌한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참혹한 위험에 빠진 현지인들이 한국 기자들에게 보낸 SNS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공통된 패턴이 발견된다. 최악이 오기 전엔 견딜 만했다는 말이다. 중앙일보에 ‘카불판 안네의 일기’로 소개된 아프간의 10대 소녀는 8월19일 새벽 “너무 무섭다. 여기서 어떻게 탈출해야지?”라고 취재 기자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그 이틀 전만 해도 “카불은 지금까지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는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인터넷 신문 ‘아시아엔’의 전문기자가 SNS로 대화한 36세의 아프간 정부군도 마찬가지. 그는 카불을 지키기 위해 수개월 전부터 수도 외곽에서 교전을 했던 모양이다. 5월18일, 6월16일만 해도 각각 “탈레반과 산발적인 전투 중. 그래도 잘 지내는 편” “우린 모두 살아남을 것”이라는 일말의 긍정과 희망의 언어를 보냈는데 8월1일이 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 내 목숨도 지키기 힘들어”로 순식간에 바뀐다.
언론에 재갈 물리기, 윤호중·김의겸의 불길한 민주주의
보통 최악은 닥쳐 봐야 실체를 안다. 상상이나 논리로 알기 어렵다. 최악이 오기 전에 전조와 단계가 있다. 전쟁의 경우, 적과의 산발적인 교전이 전조다. 군인들이 위험에 처하는 건 다음 단계다. 그 단계를 지나 민간인이 참혹한 상태가 되면 최악이다. 악법의 경우라면 어떨까. 통상 다수당에 의한 국회에서의 날치기 처리가 전조다. 1차적인 이해관계자가 악법의 희생자가 되는 건 그다음 단계. 이 단계를 넘어서면 일반 국민이 직접 피해를 보게 된다.
8월25일 윤호중 원내대표의 지휘로 민주당이 국회에서 일방 통과시키려 했던 ‘언론의 입에 재갈 물리기 법’(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불길하다. 세상의 비판이 워낙 커지자 처리 일정을 30일로 미루는 제스처를 썼지만 입법 독재에 취한 집권세력이 이걸 강행하는 건 불 보듯 환하다. 그들은 2019년에도 공수처법과 선거법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이때 날치기 된 법의 여파로 세계 정치사의 코미디인 위성정당(열린민주당)이 떴다방처럼 2020년에 태어났다. 코미디는 비극으로 바뀌고 악법은 더 큰 악법을 낳는 것일까. 열린민주당의 일원인 김의겸 의원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안건조정위원회라는 곳에 야당 자격으로 들어가 여당 편을 들어줌으로써 언론재갈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가능케 해주었다. 2021년 언론 악법이 성사되면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공신록의 첫 번째 명단에 2019년의 선거 악법 덕분에 위성정당 비례의원이 된 김의겸을 올려야 할 것 같다. 또한 김의겸은 민주주의 흑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처음엔 일부 기자만 고통, 나중엔 국민이 권력에 고개 숙여
김의겸의 언론관은 특이하다.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인 그는 국회 안건조정위 회의 때 민주당보다 더 앞장서서 언론 전체를 싸잡아 비난했다. 한국일보가 특종 보도한 국회 안건조정위 회의록에 따르면 김의겸이 “오염물질 배출 벌금인 5000만원에 비해 언론에 물리는 벌금 1000만원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며 언론사를 오염 배출 업체와 비교했다고 한다. 그 자신이 한겨레신문에 있을 때 오염물질 같은 기사를 썼다는 얘기인지, 권력의 맛을 알게 되자 모든 언론이 오염물질처럼 없어져야 할 존재로 다르게 보인다는 얘기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언론재갈법은 통과될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 앞길에 어둠이 깔렸다. 처음엔 악법과 전선에서 맞서 싸우는 일부 기자들만 고통을 받겠지만 점차로 언론 전반이 위축될 것이다. 언론이 권력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다음 수순은 국민이 권력에 고개를 숙인다. 언론과 권력과 국민의 악순환이다. 민주주의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