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정치평론학회 회원의 칼럼기사를 발췌한 것입니다.
산길에서 호랑이를 만난 어머니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라는 말에 떡을 한 개씩 내어주다가 결국 잡아먹히고 말았다는 옛날 얘기가 있다. 요새 어떤 아동용 유튜브에선 호랑이가 집에 숨어있던 아이들까지 다 잡아먹는 스토리로 발전했다.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의 위험천만한 판단 미스
8월12일 임기를 시작한 홍현익 국립외교원장(62)의 지난 1주일 치 발언을 접하면서 자신은 물론 자녀들까지 호랑이 먹이로 내어준 가여운 어머니 이야기가 떠올랐다. 홍 원장과 그를 임명한 문재인 정권이 판단 미스한 어머니라면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 군사정권은 야금야금 팔다리를 먹어치우는 호랑이 아닐까. 부지런하고 성실한 한국 국민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사태를 지켜보다 희생당한 아이들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이 망상이길 바란다. 하지만 안보전략을 짜는 당국자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할 필요가 있다.
홍 원장은 북한 김여정의 “한·미 연합훈련은 북남관계의 앞길을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는 한마디에 즉각 “한·미 연합훈련을 반드시 실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떡 하나를 내주었다. 이어 한국 정부가 고심 끝에 연합훈련의 규모를 대폭 축소했으나 김여정은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남북 간에 잠시 개통했던 통신선마저 끊었다. 이 지경에서도 홍현익은 떡 하나를 더 꺼내 “북한 입장에서 한·미 연합훈련은 하느냐 마느냐가 문제일 뿐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는 취지로 김여정을 두둔했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가 훈련하는데 북한은 훈련하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단거리 미사일이라든지 장사정포 이런 것들을 훈련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아예 앞으로 예상되는 그들의 도발마저 정당화했다. 수도권 인구 수천에서 수만 명 살상이 가능한 북의 장사정포나 핵무기를 장착한 단거리 미사일의 발사가 홍현익의 눈엔 상식인 모양이다. 이제 홍현익의 상식에 따라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면 당연한 것이고, 안 쏘면 고맙다고 해야 할 판이다.
홍현익 원장은 군사적 무지를 노출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인 한·미 연합훈련과 실제 화력을 사용해 무기 성능을 개선하는 탄도미사일 발사(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불법행위)를 맞교환 가능한 등가물로 판단한 것이다. 홍현익의 치명적 판단 미스는 그 사람 개인의 학자적 견해에 그치지 않고 이 정권 주요 의사결정자들의 일반적인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렵다. 안보 상황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달을 때 한·미 연합전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북한의 핵무력만 위협적으로 활개 친다면 우리 국민은 집에 있는 아이들처럼 떨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신임 국립외교원장의 발언들은 그의 말대로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 자체도 국가안보”라는 관점에서 이해해 줄 부분이 있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호랑이와의 우호적인 관계는 이쪽에도 상응하는 발톱과 이빨이 있을 때 형성되는 법이다. 홍현익은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의 53분의 1, 한국의 군사력은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보다 우수하다”고 그럴듯하게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거대한 몸집도 미량의 독극물에 쓰러져
국제 현실을 냉정하게 보는 안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경제력이나 재래식 군사력이 크다는 것과 발톱과 이빨이 날카로운 것은 다르다”고 지적한다. 거대한 몸집이 미량의 독극물에 쓰러지는 건 한순간이다. 풍요를 즐기던 아테네는 군사국가 스파르타한테 한 방에 무너졌다. 이런 사례는 동서양 역사에 수도 없이 많다. 나라가 외적에 당하는 것은 지도자들의 방심과 분열, 나태한 정신만으로 충분하다. 천천만만이 있어도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녹슨 쟁기와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