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궐 선거 이후 여야는 승패를 떠나 민심을 확인했다며 쇄신과 혁신을 약속했다. 그러나 재보선이 끝난 지 2주가 지났는데도 구태의연한 여야정치권을 보면 씁쓸하다. 민주당은 '도로 친문당' 국민의힘은 '도로 새누리당'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쇄신을 공언했던 여야 정치권의 혁신 속도가 너무 더디고 알맹이가 빠진 졸속처방으로 인해 반성만 외치다 오히려 퇴행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여당은 선거참패 원인 진단과 2030세대의 청년정책 및 부동산 정책의 방향을 놓고서, 야당은 야권재편론의 방향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불복론 및 사면론을 놓고 내부 잡음이 거세다.
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조국 반성문'을 썼다가 강성 당원들과 지지자들로부터 문자폭탄을 받고 마침내 조국 이름을 빼는 촌극을 보였다. 결국 민주당 초선들의 쇄신안도 "당 지도부에 당의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쇄신안 마련을 위한 당 쇄신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구한다"는 밋밋한 것으로 후퇴했다. 민주당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는 친문 핵심인 윤호중 의원이 맡았고, 내년 대선을 총지휘할 당대표 후보들도 '친문 일색'이다.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출마한 권성동·김기현·김태흠 의원도 사면을 주장하고 나섰고, 당권 도전을 준비하는 주호영 권한대행도 "많은 사람이 사면을 바란다"며 힘을 보탰다. 초선 김웅 의원이 당대표 도전에 나서는 등 소장파들이 탄핵불복론과 사면론을 반대하면서 '도로 새누리당' 회귀를 견제하는 모양새이지만, 역부족이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선거참패에도 불구하고 선거민심과 동떨어진 해괴한 정책을 선보여서 당쇄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들은 민심의 본질을 호도하는 포퓰리즘적 대응을 보여주고 있어 우려된다. 이들은 이번 선거에서 20대 남성들이 여당에 등을 돌린 걸로 나오자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자)'을 다시 잡겠다고 '군대 포퓰리즘'을 꺼냈다.
모병제를 화두로 던진 박용진 의원, 군 가산점을 부활하자는 김남국 의원, 모병제를 서두르자는 권인숙 의원이 그들이다. 이들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민주당이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는 주장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동안 모병제와 군가산점제 등은 청년층 표심을 잡기 위한 단골 메뉴였다. 그러나 20대 남성들이 여당에 분노하여 이탈한 이유가 과연 국방문제 때문인지 의문이 든다. 이것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많은 청년들은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를 선택한 이유로 지독한 비정규직 문제 등에 따른 취업난과 급등하는 부동산 등으로 인한 좌절감을 꼽았던 게 사실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에서 무주택자와 유주택자 가리지 않고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을 유권자들이 저항투표로 표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1주택자를 포함해 집을 가진 사람들은 '징벌적 과세주의'에 불만을 쏟아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집구매)'에 참여하지 못한 젊은 층도 과연 내 집을 가질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과 저항감을 야당후보 지지로 표출하였다.
따라서 이런 '이대남' 호출정책은 청년 분노나 불안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진단 없이 표심 잡기로만 변질돼 20대 남녀 페미니즘 갈등을 부추기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더욱더 이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식으로 원인진단은 외면한 채 민심호도용 포퓰리즘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7월 30일 여당의 부동산 입법을 비판하는 국회 연설에서 "그 이름이 오래도록 역사에 기억될 것"이라고 밝힌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정책의 배신』이란 책에서 "청년들을 희생시키는 정책을 남발해 586 기득권이 혜택을 입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의 이런 지적은 당시 부동산 법안 발의자인 박주민 의원과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법 시행 직전 임대료를 대폭 올린 사실이 선거를 앞두고 발각되어 그의 말대로 "586 운동권의 청년세대 희생론"이 거짓이 아님을 입증시켰다.
이런 윤희숙 의원의 '586 운동권의 청년세대 희생론'은 서강대 사회학과 이철승 교수의 '586 운동권 청년세대 약탈론'과 닮았다. 2019년 8월 11일 『불평등의 세대』를 쓴 이철승 교수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규직 중심의 조직노동계와 유착한 586운동권 그룹의 기득권적 태도를 통계를 통해 학술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그는 "586 세대가 민주화운동으로 얻은 기회와 특권으로 후속세대에게 분배되어야 할 부와 권력을 지난 15년 이상 장기적으로 독점하면서 이제는 불평등의 치유자가 아니라 불평등의 생산자이자 수혜자로 등극했다"고 비판했다. 이철승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는 정규직 노조와 자본이 연대해서 하청과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구조다. 1% 대 99%가 아니라 20%가 80%를, 또는 50%가 50%를 착취하는 사회"라고 진단하면서 586세대의 기득권 타파를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IMF 위기 속에서도 상위소득 10%의 상층조직노조는 임금소득을 19%씩이나 올리면서 비정규직과의 임금격차를 더욱 벌리고, 고통분담을 회피하면서 민주화의 과실을 독점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즉 노동계와 연계된 586 운동권이 민주화의 과실을 독점하고 고통분담을 외면한 상위소득 10%를 견제하지 않고, 충실히 대변했다는 것이다.
잠정적 결론으로 남녀 성별을 떠나 2030세대가 여당에 등을 돌린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페미니즘정책' 때문이 아니라 집권당을 이끄는 '586 운동권의 불공정과 기득권 수호정책'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보는 게 적절하다. 따라서 대안도 586 운동권의 기득권 타파의 연장선상에서 부동산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혁신 방향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첫째, '이대남'의 호출에 따른 국방정책을 중단해서 선거 민심을 호도하지 않는 게 필요하다. 둘째, 2030세대와 청년들의 불만이 불공정하고 기득권적인 586에 대한 분노에 있는 만큼, 586의 기득권 타파와 함께 공정의 관점에서 부동산 정책과 비정규 정책 및 병역제도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만일 1가구 1주택을 벗어나는 주택소유가 사회적 악이고 범죄라면, 정부가 '공평과세'라는 세금정책의 본령에서 벗어난 '징벌적 과세주의'를 멈춰야 할 것이다. 그 대신 근본적인 특단의 정책수단으로 2005년 7월 15일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제안한 것처럼 '성인 1인당 1주택 소유하기 범국민운동'과 같이 법적인 소유범위를 정하고, 이를 넘어서는 주택은 유상으로 국가가 수용하는 등의 사회적 합의방식을 선택해서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주거권과 소유권보장 차원에서 보유세와 양도세는 폐지하거나 대폭 인하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청년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남녀대립 문제'도 '부모세대와 청년세대의 대립문제'도 아니라는 점이다. "IMF 소득불평등구조에서 금수저계층에 의한 흙수저계층의 착취문제", 상위소득 1%와 차상위소득 10%의 담합에 의한 비정규직과 여성의 임금차별과 약탈로 보는 게 적실하다. 따라서 그 해법은 스웨덴 사민당이 추진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했던 것처럼,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비슷한 일에 대해 비슷한 임금(정규직의 80% 수준까지 임금)을 주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연대임금제'를 제도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병역문제도 모병제나 징병제가 아니라 국민개병제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 국민개병제는 강제와 처벌이 아닌 자발적인 참여와 헌신, 애국심에 의해 운영되는 시민군대를 말한다. 영세중립국인 스위스도 '공화주의적 국민개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시민의 자발적인 애국심에 기초한 '공화주의적 국민개병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인정, 부당한 명령의 불복종 인정, 고위공직자의 병역헌신, 시민교육 제도화, 애국심 고취, 공익활동복무제 등을 인정하는 것을 통해 자발적인 시민적 애국심을 복원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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