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정치평론학회 회원의 칼럼 기사를 발췌한 것입니다.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12443

김정은이 북한군을 러시아에 파병한 사실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일 먼저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현재 파병된 병력이 3000여 명이며 12월까지 총 1만2000명 규모의 전투병이 수송될 것이라는 신속하고 정밀한 내용은 우리 국가정보원이 밝혀낸 쾌거다. 한국 정부가 운용하는 인공위성이 북한 청진과 함흥 앞바다에 각각 정박한 2척의 러시아 상륙함에 올라탄 특수부대원들의 움직임을 찍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국제 정보사회에서 한국 정보기관의 수준과 실력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국정원은 적어도 신호정보(시긴트·SIGINT)를 포착해 실체를 알아내는 과학기술적 능력에서 미국 다음이며 일본·중국에 꿀리지 않는다.

국가정보원의 ‘신호정보’ 능력, 일본·중국에 안 꿀려

문제는 인간정보(휴민트·HUMINT). 문재인 정부 시절, 비전문가 민간인들로 구성된 ‘국정원 개혁위’라는 이상한 기구가 과거 비민주적인 적폐를 청산한다며 정보기관의 ‘메인 서버’를 다 들여다봤다. 이 사건은 중국 등 주요 정보활동 지역에 5~10년 혹은 그 이상 기간 동안 심어놨던 이른바 블랙요원들이 순식간에 숨고, 흩어지고, 한국과 손절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정보기관에서 인간정보망이 거의 해체되다시피 한 또 다른 결정적 사건으로 2024년 1월부터 시행된 ‘국정원으로부터 간첩수사권 박탈법(국정원법 전부 개정)’을 들 수 있다. 인간정보의 특성상 그동안 국정원에서 비축한 정보자원이 간첩수사권을 독점적으로 갖게 된 경찰로 실질적으로 이전되지 못했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평가다. 국정원법 전부 개정안은 2020년 12월 정기국회에서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일방적으로 처리됐다. 3년 경과 규정을 뒀기에 발효는 윤석열 정부에서 시작됐다.

다시 김정은의 러시아 파병 사건으로 돌아가자. 시사저널이 빈약한 대북 인간정보 환경 속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취재했다. “김정은이 파병 대가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받는 돈은 병력 1인당 월 500만원이다. 1만2000명을 1년간 보내기로 했으니 총 액수는 7200억원. 하지만 실제 개인에게 지급되는 돈은 없다. 7200억원 전액이 김정은의 통치자금으로 들어간다. 파병 군인들은 당 간부의 자식은 없고 순수 노동자·농민 같은 흑수저 출신들이다. 사실상 러시아군을 대신해 총알받이로 나간다고 보면 된다. 해당 병사의 가족들이 소식을 듣고 비탄에 젖어있다.”

김정은이 두려워하는 ‘인간정보’ 심어야

이 취재의 원천 소스는 중국을 드나드는 복수의 북한 고위 당국자들이다. 한국 정부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사실성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신호정보와 달리 인간정보에 내재한 위험과 민감성을 고려해서다. 시사저널의 취재 내용을 접한 정보 분석가들에 따르면 김정은이 푸틴과 파병 계약을 맺은 이유는 첫째가 돈, 둘째가 실전 경험 쌓기, 셋째가 러시아로부터의 고도 핵기술 이전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에게 파병 사실을 감추고 싶어 하는 이유도 돈 때문일 것으로 봤다. 남의 나라 전쟁터에 나가는 평민 자식들의 생명을 담보로 매년 7200억원씩 김정은 혼자 챙긴다면 누가 납득하겠느냐는 말이다.

전 국정원 관계자는 “김정은은 어젯밤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한국 정보기관이 아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했다. 이런 수준의 고급 정보 출처는 18m 지하에 숨어있던 헤즈볼라 수장을 이스라엘 공군이 벙커버스터로 폭사시켰을 때 교훈적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기관 모사드가 20여 년간 적의 지도부 안에 휴민트들을 심어놓은 결과라는 것이다. 김정은의 무모한 러시아 파병 사건을 계기로 한국 정부의 대북 인간정보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윤석열·한동훈·이재명 세 권력자가 싸우지 말고 초당적으로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