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정치평론학회 회원의 칼럼기사를 발췌한 것입니다.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말이 있다. 장마에 큰물이 나면 말은 강한 힘과 민첩한 발놀림으로 빠져나오려 애를 쓰다 제풀에 무너지기 일쑤다. 반면 소는 등어리를 물에 기대 둥둥 떠내려가다 살길을 찾는다. 저수지처럼 정지된 물에 말과 소를 던져 넣으면 말의 헤엄치는 속도가 소보다 두 배 이상 빠르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큰물이 들었을 때 짐승의 생존법은 수영 실력이 아니라 물살을 대하는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우생마사는 인생의 위기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우화다. 어려움에서 구원을 얻는 비결은 힘과 기술이 아니라 위기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태도일까.
말은 어떻게 죽고 소는 어떻게 사나
첫째, 시간과 공간을 넓게 쓰는 습관. 말은 실험 공간인 저수지에선 힘과 기술에 의지해 소보다 빨리 헤엄쳐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인 홍수 사태가 일어나자 말은 전후좌우 1m 공간에서 일진일퇴를 반복하다 20분 만에 가라앉는다. 소는 종으로 떠내려가면서 2~3km, 횡으로 조금씩 강가를 향해 몸을 움직여 수십m 공간을 활용해 생존에 성공한다. 시간을 길게 써라. 조급하면 죽는다. 세월을 두려워하지 않는 느긋함, 미지의 공간에 투신하는 넓은 시야가 당신을 구할 것이다.
둘째, 승리보다 생존에 가치를 부여하라. 말은 저수지의 습관대로 빨리 일을 처리하고 소와 경쟁해 이기겠다는 성질이 발동했을 것이다. 소는 물살과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고, 빨리 살아야 한다는 강박도 없었다. 긴 시간, 넓은 공간에 저절로 떠가면서 살 방도가 어디 있나 생각하다 강가로 몸을 비틀었을 것이다. 바둑에서 크게 이기려다 대마가 죽는 일이 허다하다. 반 집만 이겨도 산다는 자세를 제2의 천성으로 익혀두면 좋다.
셋째, 힘과 기술에다 겸손과 지혜를 보태라. 힘과 기술이 눈에 보이는 실력이라면 겸손과 지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력이다. 힘과 기술은 대체로 특정 시점, 특정 조건에서 짧게 사용하기에 좋은 에너지다. 반면 겸손과 지혜는 보편적 시간, 보편적 상황 일반을 관통하는 기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겸손과 지혜에는 나도 모르게 많은 지식과 정보, 깨달음들이 들락거린다. 소가 등어리를 물에 기대고 네 발을 하늘로 향한 채 떠내려갈 때 그의 시야에 많은 기회가 스쳐 지나가는 것과 같다. 말은 세차게 흐르는 물살에 얼굴을 박고 네 발을 기민하게 놀리지만 국면적인 행동에 불과하다. 큰 위기엔 겸손과 지혜가, 작은 어려움엔 힘과 기술이 어울리는 법이다.
윤 당선인, 시간과 공간을 넓게 써야
5년 만에 나라 운명을 바꾸는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새 정권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많은 이가 크든 작든 영향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이긴 윤석열 당선인 쪽은 민심의 거대한 물줄기에 올라탔다 해도 사심이나 교만이 발동하게 되면 위기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정권을 빼앗긴 문재인 대통령 쪽은 지금 상태 자체가 거대한 위기임을 인식해야 한다. 소처럼 흘러가면서 살길을 찾아야지 말처럼 국면만 보고 물살을 자꾸 거스르다가 낭패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금이 힘과 기술을 써야 하는 전술적 국면이 아니라 겸손과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전략적 상황임을 감안하는 게 좋다. 매사 과유불급이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 문 대통령이나 윤 당선인이나 소가 어떻게 살고 말은 어떻게 죽었는지 살필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