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정치평론학회 언론보도 기사를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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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Interview]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공약도 안 보고 계급배반 투표, 지역 몰표… 직관적인 '숏컷 투표'가 유권자 입장에선 경제적"

2016년 4월 제21대 국회의원선거(총선)에선 '새누리당 우세'라는 예측을 뒤엎고 더불어민주당(123석)과 국민의당(38석)이 승자가 됐다. 같은 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선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당선됐다. 선거는 언제나 예측을 빗나가고, 유권자는 언제나 기대를 배반해왔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선거와 유권자에 대한 전제가 처음부터 잘못 설정됐던 것은 아닐까? '이코노미조선'은 제343호 기획 '선거의 경제학'을 통해 당신이 그동안 몰랐던 '진짜 선거'에 대해 알아봤다. [편집자 주]

제21대 국회의원선거(총선)를 앞두고 집마다 배달된 선거 홍보물에는 국회의원 후보자와 각 정당의 공약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유권자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가장 부합하는 후보와 정당에 투표할 것이라는 ‘합리적인 기대’에 기반해 만든 공약과 홍보물이다. 진보 정당은 저소득층을, 보수 정당은 고소득층을 상대적으로 더 대변한다. 하지만 실제 선거 결과는 항상 이러한 합리적 기대를 배반했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의 면접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저소득층(월 소득 299만원 이하)의 50%가 새누리당에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고소득층(월 소득 500만원 이상)은 모든 소득 계층 중에서 새누리당에 가장 적게 투표했고, 민주통합당에 가장 많이 투표했다.

제21대 총선을 앞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4월 3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데일리 오피니언’에 따르면, 자신의 생활 수준을 ‘상·중상’이라고 인식하는 이들 가운데 41%가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통합당 지지율이 가장 높은 이들은 생활 수준 ‘하’였다.

그러나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런 유권자들의 투표 행동에도 나름의 합리성이 숨어있다. 4월 8일 ‘이코노미조선’과 만난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유권자 입장에서 정당의 모든 공약과 후보자의 세세한 부분까지 검토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행동"이라며 "자세히 살펴보면 ‘제한된 합리성’을 갖고 저마다의 판단 기준에 따라 ‘경제적으로’ 투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급 배반 투표가 나타나는 이유는.

"계급 투표는 저소득층이 진보 정당에 투표한다는 개념보다 ‘블루칼라 노동자’가 진보 정당에 투표한다는 개념에 가깝다. 서비스직·사무직과 같은 화이트칼라 노동자가 늘어나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경계가 불분명한 자영업자가 대거 나타난 지금은 계급 투표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다. 후기 산업화 과정에서 진보 정당은 고학력 노동자와 중산층을 새로운 지지기반으로 포섭했다. 소위 말하는 ‘강남좌파’가 생겨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버니 샌더스와 같은 미국의 급진 진보도 고소득·고학력자가 주된 지지층이다. 반대로 하층 계급은 보수 정당의 지지기반으로 편입됐다. 보수 특유의 ‘공동체주의’가 보호가 필요한 이들 계급에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몰락한 백인 계층, 러스트벨트(쇠락한 제조업 지대)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며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이변이 일어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지역주의가 여전히 투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역주의에 따라 투표하는 것이 유권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보수 정당은 영남에 집중했다. 반대로 진보 정당은 호남이 텃밭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느 지역은 수혜를 입었고, 어느 지역은 소외되는 현상이 교차했다. 이 지역 유권자들은 특정 정당이 집권하면 텃밭을 가꿔줄 것이라는 경험적 기대를 하고 있고, 그에 따라 투표하는 것 뿐이다."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서는 어떤 투표 성향이 나타나나.

"인물을 중심으로 투표 대상을 결정하는 성향이 강하다. 복잡한 공약보다 사람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 직관적인 투표다. 대선뿐만 아니라 총선에서도 정당의 정체성보다는 누구의 정당인지가 중요하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듬해에 민주당은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새천년민주당)’는 쪽과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열린우리당)’는 쪽으로 갈라진 상태에서 총선을 치렀다. 결과는 열린우리당이 과반 정당이 되고 새천년민주당은 참패했다. 2002년 대선에서의 ‘노무현 열풍’이 총선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각 지역구의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친분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성향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연령·세대별로 투표를 결정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윗세대로 갈수록 이념 투표 성향이 강하고, 아랫세대는 이슈 투표 성향이 강하다. 산업화 과정을 겪은 60세 이상은 보수 성향이 강한 편이다. 소위 586세대로 불리는 50대는 민주화 운동 영향을 많이 받아 진보적인 성향을 띤다. 윗세대는 물질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성장과 분배 중 자신에게 유리한 이념을 선택하고, 이에 따라 투표를 결정하기도 한다. 반면 아랫세대는 특정한 이슈에 집중한다. 성소수자·성평등과 같은 젠더 문제나 안보 문제 등 특정 이슈에 대해 자신과 가치관이 일치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다. 20~30대 남성은 보수 정당 투표율이 높고, 여성은 상대적으로 진보 정당 투표율이 높은 이유가 여기 있다. 청년 일자리 문제도 최근 중요성이 두드러지는 이슈 중 하나다."

한두 가지 요인에 따라 투표 대상을 결정하는 것이 비합리적인 행동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백화점에서 모든 상품을 보여주고 그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선택장애가 온다. 유권자는 복잡한 걸 싫어하고, 복잡하게 검토한다고 해서 기대에 들어맞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두 가지 지름길만 보고 직관적으로 투표하는 ‘숏컷(shortcut) 투표’가 유권자 입장에서는 경제적이다. ‘제한된 합리성’으로 투표하는 것이지, 결코 비합리적인 투표를 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투표는 어떻게 다른가.

"지역구에서는 전략 투표를 하고, 비례대표에서는 진심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 시간을 들여 투표했는데 사표가 된다면 기회비용을 날린 셈이 되지 않나. 당선자가 오직 한 명뿐인 지역구 투표에서는 양대 정당 중 한 명을 선택하고, 비례대표에서는 자신이 정말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국민의당은 호남 23석을 제외하면 나머지 지역구 선거에서 서울 2석에 그쳤다. 지역구 득표율을 다 합산해도 14.9%밖에 안 되는데, 비례대표에서는 26.7%를 얻으며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을 앞섰다. 비례대표 투표에서도 약간의 사표 회피 심리가 작용한다. 득표율이 3% 미만이면 1석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표용지에서 정당 순번이 앞으로 올수록 유리하고, 뒤로 갈수록 불리하다. 이런 심리의 수혜자는 민중당·녹색당 등의 표를 흡수했던 정의당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어떤 요인이 유권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나.

"유권자는 자신의 투표를 통해서 일종의 ‘효능감’을 체감하고 싶어 한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우세한 지역에서는 투표율이 낮고, 경합 지역에서는 투표율이 높은 이유가 바로 효능감의 많고 적음 때문이다. 이 효능감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방법이 바로 ‘포퓰리즘’이다. 정당이 유권자에게 직접적인 보상을 약속하기 때문에 포퓰리즘은 언제나 유효한 전략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긴급재난지원금이 걸려 있다."

이러한 유권자 이해를 바탕으로 정당은 선거 전략을 어떻게 수립하는 게 좋겠나.

"일단 자신의 지역적 기반을 확실히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경합지역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우세지역에 소홀하면 지난 총선의 대구 수성갑(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 순천(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처럼 ‘견제투표’라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중도층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이슈 싸움’이 중요하다. 각 연령·성별·계층에 맞는 주요 이슈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선점할 필요가 있다. 이번 총선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역시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이다. 여당과 야당 모두 찬성하는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줄 수 있을 건지가 관건이 될 것 같다."